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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택(주)이노블록 대표
대한민국 콘크리트 블록 산업의 품격을 높인 불도저
기술 제휴 조건으로 설비 구입 최초 사례
아시아 유일의 초일류 기업 모임 CPA 멤버
 
신호연 기자 기사입력 :  2022/09/19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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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성신문

 

‘2022년 대한민국 중소기업인 대회’에서 대통령표창 수상

 

㈜이노블록(한용택 대표)은 고품격 보차도블록 및 경관옹벽블록 산업을 이끌고 있는 기업으로, 1971년 창립하여 불모지나 다름없던 업계의 열악한 상황을 제품의 프리미엄화로 대변신시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냈으며, 제품의 다양성과 기술의 융복합으로 국내 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역동적 혁신 성장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 등 국민경제에 공헌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5월 25일  ‘2022년 대한민국 중소기업인 대회’에서 대통령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반갑게 맞아주는 ㈜이노블록의 선장 한용택 대표의 얼굴 표정과 눈빛에서는 7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단호한 결기와 열정, 추진력이 풍겨진다.

 

  © 화성신문

 

 

‘국내 콘크리트 업계의 이단아’

 

한 대표는 ‘국내 콘크리트 업계의 이단아’라고 불려진다. 일반적인 여타 기업들과 다른 독특한 행보를 통해 얻은 별명이다. 한 대표는 1974년 포항제철에 입사하여 박태준 회장 지휘 아래  제철소를 건설할 때 10년간 근무했다. 이 기간 동안 ‘안 되면 되게 해라’, ‘*우향우 정신’으로 목표를 정하면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 몸에 배었고, 당시 신일본제철 기술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배운 일본어는 향후 사업 전개에 큰 자산이 되었다. 

 

*우향우 정신 :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모두 바다에 빠져 죽을 각오로 일을 추진한다는 포항제철의 정신을 말한다.

 

“내가 하는 일은 내가 책임져야 된다. 내가 사장이라는 마음으로 근무하여 10년 동안 월급 받으면서 사장 연습하고 나온 거다. 회사에서 배운 거는 강한 정신력과  목표 의식, 어떻게 하면 되게 할 건가 하는 긍정적인 마인드이다. 혹독한 직장 생활을 통해 단련 받고 나오니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었다”라고 회상하는 한 대표의 얼굴에는 자부심과 그 시절의 향수가 느껴지는 듯 했다.

 

1985년도에 한 대표가 포항제철을 나와 부친과 합류한 후 가내공업 수준의 회사에서 처음 시도한 일은 일부 품질과 생산성에 문제가 있는 부분을 자동화 하는 것이었다. 자동화 설비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면서 품질이 안정화되고 생산성이 올라서 매출이 두세 배 정도 뛰었다. 이후 한 대씩 차근차근 자동화를 추가하였다. 안정적 운영으로 IMF 위기도 넘기고 2000년도에 주변에서 소음과 먼지에 대한 민원도 생기고, 회사도 좀 키우려는 생각으로 현재 2공장인 석포리에 자리를 잡아 화성과 인연을 맺었다. 

 

 

절박하면 기적이 생긴다

 

어마어마한 물류비, 수금이 잘 안되는 토목 자재, 치열한 가격 경쟁, 인건비와 원자재의 가격 상승 등으로 2003년, 사업 시작 후 처음으로 적자가 발생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듯 했다. 나이 55세에 출구가 보이지 않으니 눈앞이 캄캄해졌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하고 찾은 곳이 미국 전시회였다. 미국, 독일, 일본 등 여러 선진국들의 설비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유독 눈길을 끈 것이 일본 타이거社 설비였다. 

 

포항제철에서 배운 일본어 실력(우리나라 콘크리트 하는 사람 중에 일본어는 제일 뛰어날 것이라는)으로 일본 사장에게 일본 공장 견학을 시켜 달라고 요청하여 일본 공장을 견학했다. 가서 보니 가격 경쟁으로 저품질의 제품이 판치는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제품들에도 장인정신이 깃든 고품질로 제 가격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었다. 

 

타이거社 기따하라 사장에게 “일본 제조 회사와 기술 제휴를 주선해 주는 조건으로 설비를 사겠다”고 제안했다. 기따하라 회장이 “30년 동안 기계 팔러 전 세계로 다녔지만 기술 제휴 조건으로 설비를 사겠다는 사람 처음 봤다”며 “자기가 30년 동안 했기 때문에 배합비, 제품 만드는 기술 다 가르쳐 주겠다”고 했지만 한 대표는 “사장님은 기계는 잘 만들지만 제조하는 건 절대로 모릅니다”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포항제철 건설 당시 신일본 제철의 제조 노하우와 그 공장에 들어가는 설비 메이커, 그리고 포항제철 직원들이 죽기 살기 하는 정신으로 삼박자가 맞아서 성공했던 경험이 이런 결정을 할 수 있게 했다. 실패 확률을 줄이고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타이거社 기따하라 회장의 주선으로 NIKKO(일본 흥업 주식회사)社 사카모토 사장과 다섯 번의 방문 끝에 2005년 8월 생산기술협력을 체결하였다. 계약서를 받아든 한 대표는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계약금이 50만 엔이었다. 한화로 500만 원 정도이다. 그때는 너무 절박해서 5억 원을 주고라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었는데 5000만 원도 아닌 500만 원이었던 것이다. NIKKO社에서는 잘 되었을 때 로얄티 쪽에 막연한 기대를 하고 계약금을 낮게 책정하였다고 한다.

 

이 기술 제휴에 대해 한 대표는 “그때 기술 제휴를 안 했더라면 이노블록은 일본 기계 비싼 걸 사다가 가격 경쟁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아마 오늘날에 존재하지 못했을 거예요. 우리 회사가 아마 망했을 겁니다.”라며 기술 제휴를 통해 실패 확률을 줄인 그 시절의 결정에 대해 자신감을 보였다.

 

▲ 경기 판교 비씨월드제약 판교 신사옥 몰리나 그레이  © 화성신문

▲ 오포더샵센트럴포레 트래버틴스톤페이버멀티 다크베이지  © 화성신문

 

▲ 경기 의왕 롯데아울렛 타임빌라스 하이랜드스톤  © 화성신문

 

▲ 영월군 주천면 도시계획도로 리콘월 그레이블랙  © 화성신문



블록을 혁신해보자 ‘이노블록’의 탄생

 

설비를 사고, NIKKO社와 기술 제휴를 맺은 다음 회사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당시 회사 이름들이 ○○산업 주식회사,  ○○공업 주식회사 이러거든요. 이름이 공업, 산업이니까 맨날 공업, 산업 쪽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때 블루오션이라는 책도 나왔었고, 이노베이션이라는 것들도 많이 했는데 제가 몇 달을 고민하다가 이름을 지었어요. ‘블록을 혁신해보자’라는 의미로 ‘이노블록’이라고 지었지요. 회사명을 지은 후 저도 모르는 사이 그 이름이 대히트를 쳤지요.”

 

타이거社의 설비와 NIKKO社의 제조기술력을 기반으로 2006년도 3월부터 제품이 나오기 시작 했다. 2006년도에 코엑스에서 전시회가 있었는데 5000만 원을 들여 전시회에 출품했다. 당시 블록 가격이 1㎡당 4천 원에서 7천 원 사이였는데, 한 대표는 3만 원을 책정하였다. 당시에 빨간 점토 벽돌이 보도 블록 포장재로 3만 원 정도에 팔리고 있었는데 보급이 많이 되던 단계여서 이를 목표로 잡은 것이었다. 1억짜리 프로젝트 하나를 따면 오천만 원 들인 전시회 본전 뽑겠다는 생각으로 나간 것이었다.

 

당시 국내 업계에서는 남들은 1원짜리 하나, 백 원짜리 하나 갖고 벌벌 떨며 죽기 살기로 싸우는 시기에 그 비싼 일본 설비를 사고, 최소한도 몇 억은 들었을 기술 제휴를 하고, 사원들을 한 달간 일본으로 연수 보내고, 전시회에 참가하는 등 “아마 6개월 안에 망할 거다. 기계 돌리기 전에 망할 거다. 이노블록이 망하려고 미쳤구나!”하는 반응이었다.

 

“2006년도에 신제품이 1억 팔렸어요. 2007년에는 17억 팔고, 다음 해에는 100억 팔고, 그 다음 해에는 180억을 팔았어요. 4년 만에 1억에서 180억을 팔고 그 다음에 이제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정도였죠.” 또 “설계회사나 건설회사에서 설계 내역서에 제품 이름을 이노블록이라고 표기할 정도가 되어, 회사 이름이 이노블록인데 제품 이름이 이노블록으로 돼 버렸죠.”

 

  © 화성신문

 

Only One Best One

 

2010년 독일의 GODELMANN社, 미국의 ANCHOR社와 기술 제휴를 하고, 2011년에는 미국의 ROSETTA社와 기술제휴를 하는 등 세계 최고의 기업들과 기술 제휴를 맺었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만이 만들고, 우리 회사만이 만들 수 있고, 또 우리 회사가 만들면 경쟁하더라도 최고의 제품을 만들자’라는 의미의 슬로건으로 ‘Only One Best One’을 만들었다. 

 

‘Only One Best One’은 언제 어디서나 최고의 품질로 정당한 대우를 받고자 하는 한 대표의 의지가 담겨 있기도 하다. “특히 건설회사 대기업에게 이노블록은 ‘을’이 아니고 동동한 ‘갑’의 회사입니다. 제가 하는 거는 절대 품질은 양보 못해요. 삼성, GS, 현대에게도 싸게 사려면 다른 데 가서 사세요. 우리는 그렇게 못 팝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품질이 낮아져야 되는데, 가격을 경쟁시키면 품질이 떨어지거든요. 사업을 하는데 품질을 속여가면서 팔아? 그런건  사업을 안 하면 안 했지 난 그렇게 못한다.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위해서도 난 그렇게 못한다.”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CPA라는 국제적인 기구가 있다. 미국 캐나다 스페인 독일 스위스 등에 있는 제일 잘 나가는 콘크리트 업계 업체들이 1년에 한 번씩 기술교류회를 하는 멤버십 모임이다. 아시아에서는 이노블록만 가입되어 있다. 잘 되는 기업들끼리 모여서 정보를 교환하며 회사 경영, 마케팅, 영업, 개발, 생산, 고객 관리 등 경영 활동 전반에 대한 노하우들을 공유하고 이런 교류회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빨리빨리 접하게 된다. 남들보다 한 발 두 발 앞서가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차별화가 되어 간다.

 

 

리틀 한용택 키우기

 

한 대표가 지금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인재 육성이다. 이른바 리틀 한용택 키우기이다.

 

이를 위해 사외 강사 초빙 교육, 기술 제휴 회사 연수, 기술 교류회 참석, 공장장들한테 일을 하나씩 맡겨보면서 ‘리틀 한용택’을 키우고 있다. ‘성공은 준비 준비된 자에게만 오는 거지 준비되지 않는 자에게 성공의 기회는 그냥 지나갈 뿐이다’, ‘목표는 기필코 달성이 돼야 된다. 이 핑계 저 핑계는 이유가 될 수가 없다.’는 투철한 정신의 리틀 한용택을 얼마나 많이 키울 것이냐가 관심사이다. 

 

이런 노력들을 바탕으로 금년 매출은 작년 대비 25% 정도 늘어나 270억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한다. 직원들에게 교육 기회를 많이 주고, 시스템 투자도 많이 하고, 제품의 다각화를 통해  안정적인 성장할 수 있는 이런 모멘텀이 만들어져 앞으로도 500억 원까지는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성공은 준비된 자에게 주는 선물

 

요즘 젊은이들에 대해 선배로서 조언을 부탁하자 한 대표는 바로 “뭔가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힘든 과정이 따라야 되는데 고통 없이 너무 쉽게 뭔가를 이루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성공을 하려면 거기에 따른 과정이 있어야 되거든요. 성공의 과실은 그냥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성공은 준비된 자에게 오는 거라고 보거든요. 성공은 준비된 자에게 주는 선물로 힘든 과정 없이 그냥 성공이라는 달콤한 과일만을 찾는다면 절대로 성공은 올 수 없다는 걸 잘 생각해서 인내심을 가지고 노력해 주길 당부합니다”라고 조언한다.

 

우리나라의 뒤처졌던  콘크리트 사업을 3D 업종이 아닌 부가 가치 있는 산업으로 만들고, 선진국 대열에 가는 선도자적인 역할을 하여 콘크리트 산업의 문화를 선진화시킨 인물로, 또 그 사람의 공헌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있고 이 콘크리트 제품이 선진화되고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다. 이렇게 우리 기업에, 국가에 사회에 기여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노 기업인의 모습에서 기업가 정신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주는 듯 하다.

 

신호연 기자 news@ih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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