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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의 전문가 칼럼 화성춘추 (華城春秋) 149]
라키비움(Larchiveum)이라는 상상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2/05/23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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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민 노작홍사용문학관 사무국장     ©화성신문

코로나19 방역지침이 완화된 봄날이 찾아오자 문학관을 찾는 발길들로 북적하다. ‘보복소비’라는 말이 유행일 정도로 그 동안 누리지 못했던 문화생활을 만끽하기 위한 기쁜 소란이 시작된 것일 게다. 그만큼 분주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지만, 문학관에 활기가 도니 덩달아 신나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문학관을 찾아주는 저 분들은 과연 어떠한 기대를 갖고 이곳을 찾는 것일까? 문학관을 향한 여러 바람들은 문학관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인식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일까? 미술관이나 박물관, 도서관에 비해서는 아직 덜 알려진 문학관의 명확한 역할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가 궁금해진 것이다.

 

문학관에 행사나 방문 문의가 폭주하는 요즘, 그러한 문의의 성격을 좀 세밀히 살펴봤다. 전시 단체 관람 예약, 문예 강좌 개설 요청, 희망도서 신청, 간행물 구독, 노작 및 백조 관련 연구 자료 열람 등등. 문의의 내용을 일별해 보면 문학관은 크게 전시로 대표되는 박물관적 기능과 도서나 자료의 열람이 가능한 도서관적 기능이 혼재된 장소라는 인식이 형성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강좌나 출판을 통해 인문교양을 함양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자 대중문화콘텐츠를 생산하는 문화시설의 기능까지 요구받고 있다. 이를 단순히 복합문화공간이라 칭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정확하게 그 성격 규명이 학적으로 정립될 수 있는 개념이 필요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대략 2010년 이후부터 라키비움(Larchiveum)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라키비움은 도서관(library)과 기록관(archives), 박물관(museum)의 합성어이다. 

 

미국 텍사스 대학의 메건 윈젯 교수가 처음 제안했다고 알려진 이 개념은 학생들이 서로 다른 공간에서 정보를 찾아야 하는 불편을 지적하며, 지식의 통합을 요청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즉 애초에는 지식 사용의 효율성과 경제성을 위해 고안된 개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적 맥락에서는 복합문화공간의 역할까지 덧붙여져 사용되는 듯하다.

 

사실 라키비움이라는 개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다소 냉소적이었다. 이미 복합적인 기능을 요구받아 온 박물관이나 도서관, 문학관의 역할에 대해 사후적으로 추수하여 멋들어진 개념으로 설명해 봤자, 관련된 기술적·인적 인프라가 충분히 갖추어지지 못한 상태에서는 결국 실무 담당자들의 노동만 착취하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통합이라는 것이 대체로 중앙집권적인 방식으로 구축되기 마련이라, 지역의 작은 공간들이 보다 큰 기관의 하청시설 정도로 인식될 수 있다는 걱정도 들었다. 아울러 이 사회에 만연한 실용주의와 편의주의가 문화와 예술의 영역까지 지배하는 풍토가 마련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라키비움에 대한 초기의 냉소가 여전히 가시진 않았지만, 최근에는 그와 같은 담론이 산출된 사회적 배경에 대해서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한국 근현대 지식사나 지성사의 맥락에서 라키비움에 대한 상상은 어떤 필요에 의해 제기되었는가? 지식 통합에 대한 요구는 조금 앞서 학제 간 ‘융합’과 ‘통섭’의 필요가 부각되던 시점의 논의들에 일정하게 부응하고 있을 것이다.

 

도서관이나 박물관, 기록관과 문학관은 분명 조금 다른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지식과 정보, 앎을 다루는 장소라는 것에 있다. 그렇기에 라키비움에 대한 상상은 지식사회의 기반을 어떻게 구축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이기도 하다. 학령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요즘, 대학에서 이와 같은 기능을 모두 감당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박물관과 도서관, 그리고 문학관 등은 지식을 다만 유통하거나 편하게 소비케 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다. 이들 기관에서 자료를 집적하고 지식을 축적하는 이유는 단순히 모아두려는 것이 아니라, 집적되거나 축적된 자료를 새롭게 배치하거나 배열하여 전혀 다른 의미의 창출을 모색하기 위해서이다. 

 

라키비움은 정보 제공의 편의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지식의 기반을 구축하는 학적이면서도 대중적인 거점이 돼야 한다. 라키비움의 실제적·이론적 정립은 여기서부터 가능하다.

 

master@noja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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