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 기고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화성신문의 전문가 칼럼 화성춘추 (華城春秋) 125]
노동자의 연구와 바보의 꿈: 전태일을 기억하는 방법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1/11/29 [09:20]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 허민 노작홍사용문학관 사무국장     ©화성신문

지난 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의 51주기였다. 12월 1일에는 그의 삶을 그린 애니메이션 영화 ‘태일이’가 개봉될 예정이라고 한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50여 년의 시간 동안 만인이 기리는 이유는 매우 깊고 다양할 것이다. 이 지면에서 전태일이라는 이름이 상징하고 내포하는 여러 의미에 대해 다룰 수는 없겠지만, 그를 기억하는 방법 하나만은 제시하고 싶다. 전태일을 ‘앎의 주체’이자 ‘연구자’로서 기록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전태일이 생전에 누구보다 배우고 싶어 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를 사 년 만에 중퇴하고, 청옥고등공민학교를 일 년 남짓 다닌 것이 ‘학력’의 전부임에도, 그는 언제나 ‘학생’이고자 했다. 쓸 수 있을 때마다 썼으며, 읽을 수 있을 때마다 읽었다. 자신의 사연을 담은 수기나 전해지지 못한 편지들, 미완의 소설과 짧은 감정의 편린들, 진정서와 호소문, 모범업체 사업 계획서, 근무 실태 조사 등등의 적지 않은 기록은 그렇기에 가능했다. 어머니의 빚으로 산 ‘근로 기준법 해설서’는 평생의 교과서였다. 닳도록 읽다가 모르는 구절이 나올 때면, 대학생 친구가 없다는 것을 한스러워 했다.

 

‘근로 기준법’의 존재는 아버지를 통해 처음 알았다고 한다. 노동자들의 유일한 희망처럼 여겨졌지만, 정작 노동자인 자신부터 법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근로 조건 개선을 위한 재단사들의 모임을 ‘바보회’라 칭한 것도 여기서 연유했다. ‘바보’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근로 조건에 대한 규정 자체를 너무 ‘늦게’ 알았다는 것이며, 시대와 바보처럼 ‘불화’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보회’는 근로 기준법 준수를 위한 운동을 목표로 한 조직이지만, 그만큼 근로 기준법을 철저히 ‘공부’하고, 노동 운동을 배우는 ‘연구 모임’이기도 했다. 즉 노동자의 지성적 실천을 위한 자립적인 앎의 공동체였던 것이다. 

 

앎의 주체이자 연구자로서 전태일의 면모는 그가 모범 업체 설립을 기획할 때도 적지 않게 반영된다. 근로 조건을 온전히 준수해도, ‘성공’할 수 있는 사업체를 직접 보여 주겠다는 그의 포부에는, 교사를 5인 이상 고용하여 직공에게 공부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노동자들의 ‘독립’을 위한 것이었다. 학력(學歷) 없는 학력(學力)의 소유자 전태일은 분명 노동 문제의 연구자이자 교육자였다.

 

전태일의 일생은 그 자체로 삶과 앎과 노동의 조화로운 공존을 보여 주는 듯하다. 가령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1983)이 전태일의 ‘지적 여정’을 보여 주는 것으로 ‘서사화’되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물론 유년 시절부터 청년 시기까지의 생애가 전기적으로 서술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삶의 결정적인 분기는 앎과 지식의 형성에 입각해 있었다.

 

어린 시절 ‘학교 자퇴’를 권하는 아버지에 반항하여 ‘가출’하고, 훗날 (운명처럼) 아버지에 의해 ‘근로 기준법’을 알게 되어, ‘독학’한다. ‘독학’의 결과, 자신(과 노동자들)의 ‘노동 경험’을 객관적으로 ‘사유’하고, ‘공유’하기 위해 ‘바보회’와 ‘삼동친목회’라는 모임을 조직한다. 여기서는 함께 노동 문제를 ‘공부’했으며 ‘지식 나눔’을 실천했다. 

 

이처럼 전태일의 삶과 그에 대한 생애사 서술의 구도 자체는 그를 단순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 문제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켜나가는 ‘독립 연구자’로서 표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제를 적용하자면, 전태일은 우선 ‘사회 과학자’였다. 노동이라는 사회적 현상을 경험적 지식 체계로 만들었으며, 그 과정에는 ‘논리 실증 주의’라 할 만한 방법들(관찰과 실험, 통계 등)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전태일은 ‘인문 학자’이기도 했다. (굳이 특정 수기를 인용할 필요조차 없이) 그는 자신의 연구 결과와 인간에 대한 이해를 심미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언어로 ‘기록’해 나갔기 때문이다. 노동자 전태일의 공부는 앎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 여러 교훈을 줄 수 있기에, 우리는 그를 연구자로서 의식적으로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master@nojak.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화성신문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인기기사목록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