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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호교수의 Leadership Inside 166]
10%의 설계가 80%의 원가를 결정한다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1/06/21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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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호 아주대학교 명예교수·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장     ©화성신문

필자가 건설회사 자문을 할 때였다. 그 회사의 토목 부문에서는 ‘설계변경’이 하나의 실적으로 인정되고 있었다. 담당자는 설계변경을 많이 해야 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처음 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중간에 변경을 한다는 것은 뭔가 잘못 되었다는 것인데 왜 이것을 좋게 생각하는 것일까? 토목공사는 도로, 항만 같은 사회 인프라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주로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발주를 한다. 토목공사를 수주하려면, 경쟁 입찰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에 입찰가를 높게 쓸 수가 없다. 그래서 받은 공사비로 공사를 하면 이익을 볼 수 없거나 이익을 보더라도 소폭이다. 그래서 일단 입찰 받은 공사에서 사후적으로 설계를 변경하여 일을 키우고 거기서 이익을 남기는 전략을 쓰는 것이다.

 

공사를 발주하는 공기관에서도 입찰과정은 까다롭게 하지만, 공사 도중에 명분만 있으면 설계를 변경해주고 공사비를 추가로 책정해주는 관행이 있었다. 그래야 그들에게도 다소간의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럴만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지하공사를 하다 보니 예측 못했던 지하수가 있다든지, 큰 바위가 있어 초기 책정한 비용으로 도저히 공사를 할 수가 없는 경우 같은 것 말이다. 시공을 하는 건설회사로서는 그런 사유를 찾아낼수록 좋은 것이다. 

 

이렇게 설계변경이 발주자에게나 시공사에게나 좋은 것이라면 초기 설계를 심혈을 들여 할  필요가 없어진다. 사실 토목공사는 땅속 사정을 미리 다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사전에 설계를 정확히 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다. 만약 시간을 좀 더 들이고, 돈을 더 투입하여 사전 조사와 설계를 정말 철저히 한다면, 설계변경 사유가 많이 사라지고 시공원가가 크게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의 혈세도 그 만큼 줄어들 것이다.

 

건설전문가들에게 의하면, 건설공사에서 설계와 그 이전 단계에 들어가는 비용은 15% 정도인데, 그 활동의 결과가 원가에 미치는 영향은 90%라고 한다. 반면에 조달과 시공에 들어가는 비용은 85%인데 여기서 비용절감을 한다고 해도 전체의 10%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제조업의 경우도 비슷하다. R&D와 설계에 들어가는 비용은 5-10%에 불과하지만, 그 활동의 결과가 제조원가의 70-80%를 결정한다. 정작 공장에서의 제조활동에 들어가는 비용은 90% 이상이지만 원가를 결정하는 데는 20-30%의 영향력 밖에 없다. 

 

그러니까, 원가를 줄이려면, 시공이나 제조 이전, 설계나 준비하는 과정에서 잘 해야 하는 것이다. 시공이나 제조에 들어가면 비용을 줄일 여지가 별로 없다. 절약은커녕 예산을 넘어서는 경우도 다반사다. 경우에 따라서는 설계나 사전과정이 엄청난 첨단 기술을 요할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간단한 아이디어일 수도 있다. CJ제일제당에서는 협력업체에서 들어오는 포장이 달라 이를 통일하는 것만으로도 몇 백억 원을 절감했다. 또 현대하이스코에서는 작은 파이프와 큰 파이프를 따로따로 컨테이너에 넣고 선적을 했는데, 사이즈를 적절히 조절하여 작은 파이프를 큰 파이프 속에 넣고 선적함으로써 부피를 줄여 거금의 물류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설계를 통해 원가를 절감하려면, 원가절감 목표를 정하고, 제품이나 프로세스를 재설계하는 것이 좋다. 창원의 LG전자 공장에서는 한 때 사무직 인력의 40%를 프로세스와 제품 재설계활동에 투입시켰다. 일상적으로 볼 때 그들은 월급 받고 노는 인력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프로세스와 제품을 재설계하여 원가를 낮추고 품질을 높였다. 

 

그런데 많은 기업에서는 이와 반대로 하고 있다. 설계나 기획 단계에 들어가는 돈을 아끼려고 이를 대충하고 원가절감은 생산단계에서 하려고 한다. 그러면 결국 대기업은 하청업체를 쥐어짜고, 중소기업은 인건비를 쥐어짠다. 그러다 보면, 사고가 터지고 결국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사전단계에서 검토하는 것이 이제는 옛날과 같지 않다. 자동차회사에서 신차를 개발할 때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디자인을 하고 또 시뮬레이션으로 제조공정을 미리 살펴본다. 그 과정에서 문제를 미리 점검해 보고, 디자인과 생산 프로세스를 재설계해 나가는 것이다. 건설공사도 프리콘(Precon)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계와 조달, 시공 전체 프로세스를 사전에 살펴보고 실제 작업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리더가 현업에서 거리를 두고 여유를 가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리더는 제조보다는 설계에 신경을 써야 하고, 설계보다는 기획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리더는 방향키를 잡아야 하고, 원류에서 문제를 막아야 한다.

 

choyho@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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