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 기고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조영호교수의 Leadership Inside 163]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1/05/31 [08:43]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 조영호 아주대학교 명예교수·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장     ©화성신문

최 씨는 모처럼 처가 식구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저녁을 먹기로 했다. 단독 주택에 사는 최 씨는 멋진 정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정원에 사람들이 다 앉으려고 하니 자리가 좀 부족했다. 최 씨의 부인이 탁자 끝에 있는 물통을 옮기고 거기에 자리를 만들려고 했다. 부인이 물통의 물을 아예 비워버리려 하는 순간 최 씨는 소리쳤다. “여보, 아무데나 버리지 마! 모래가 파이면 안 돼.” 그러나 그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최 씨의 부인은 물통에 있는 물을 ‘아무데나’ 쏟고 말았다. 

 

최 씨는 자신이 잘 가꾸고 있는 정원을 부인이 손상시키는 것 같아 화가 났다. 그런데 부인이 그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여보, 모래는 파이지 않았어!” 이 말에 최 씨는 대꾸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리가 없지.” 최 씨는 가서 물 버린 자리를 확인했다. 자신이 걱정한 대로 모래가 파여 있었다. “여기 이렇게 파여 있잖아. 당신은 왜 거짓말을 해!” “그깟 모래가 좀 파이면 어떻다고 당신은 그래!” “그깟 모래?” 모처럼 손님을 초대해 놓고 부부싸움은 점점 뜨거워졌다. 

 

그날 사건의 후유증이 오래갔다. 부인도 몹시 기분 나빠했으며, 자신도 매우 불편했다. 처음에는 부인의 행동이 원망스러웠다. 다른 건 몰라도 거짓말을 하는 게 용서가 되질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생각도 서서히 줄어들게 되고 다른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그 때 모래가 파였다는 것을 꼭 확인하고 입증을 했어야 했나? 그렇게 해서 얻는 게 무엇이지?’

 

최 씨는 친구인 김 사장 생각이 났다. 한번은 김 사장이 차를 바꾸고 나타났다. 

 

국산차를 타던 그가 미제차를 타고 온 것이다. 이를 본 친구들이 외제차에 대한 논쟁을 벌였다. 유럽차가 좋다, 일제가 좋다, 미제가 좋다~ 의견이 다양했다. 그러다 이야기는 미제차가 별 볼일 없다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런데도 김 사장은 친구들 의견을 잘 들어주었고, 반박하지 않았다. 

 

덕분에 그날 모임은 별 사고(?) 없이 끝났다. 김 사장은 항상 이런 식이다. 그가 누구하고 논쟁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남에게 항상 양보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챙길 것은 챙긴다.

 

김 사장은 가구를 판매하는데 우연히 그의 매장에서 이런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한 고객이 나타나서 경쟁사 침대의 좋은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최 씨가 옆에서 볼 때 아무리 고객이라고 하지만 좀 너무 한다 싶었다. 그래도 김 사장은 그 고객의 주장을 결코 반박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점이 그렇게 좋은 지, 왜 좋은 지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리고는 그 고객이 관심 있어 할 자신들의 가구를 보여주었다. 결국 그 고객은 김 사장이 최근에 개발한 편백 침대를 구매했다. 김 사장은 말했다. “내가 고객을 이기면 뭐하나? 침대 하나 팔면 되는 거지.”

 

말로 싸우는 것을 논쟁이라고 한다. 정치가들은 논쟁을 즐긴다. 선거 때가 되면, 후보자들은 TV에까지 나와서 공개적으로 논쟁을 한다. TV토론이 끝나면, 다음날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다. 몇 대 몇으로 누가 이겼다고. 2020년 10월 22일, 미국 대통령 선거 출마자인 트럼프와 바이든이 마지막 TV토론을 벌였는데 CNN은 이 토론은 53:39로 바이든이 우세한 것으로 평가했다. 

 

그런데 일상생활이나 비즈니스에서 논쟁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논쟁을 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고 또 논쟁에서 이기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대체로 논쟁은 자존심에 상처를 준다. 그리고 상대의 태도를 바꾸기 보다는 더욱 방어적으로 만들고, 상대의 생각을 나의 생각과 더욱 멀리가게 한다. 

 

만약 경쟁사 제품에 대해 칭찬하는 사람에게 그 생각에 반박하는 자료를 들이대고 논쟁을 한다면 그는 그의 생각을 합리화하기 위해 더 많은 자료를 찾거나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소위 양극화 현상이 벌어진다. 처음에는 찬성의견이 48과 52였던 두 사람이 한참 토론을 거친 후에, 찬성이 48이었던 사람은 30이 되고, 찬성이 52였던 사람은 60으로 늘어나는 현상이다. 

 

사실 우리는 말싸움이 필요 없는 경우인데도 말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이기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상대의 태도나 행동을 바꾸는 것이 목적이라면 논쟁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논쟁을 이기는 길이다. 

 

상대의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도 일단 그런 생각 자체를 비난 없이 수용해야 한다. 틀린 생각을 내가 바꾸어 주려 하지 말고, 그 스스로 바꿀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야 한다. 명백한 오류인데 바로 잡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할 경우가 있다. 이럴 때일수록 한번 더 생각해야 한다. 오류를 잡아줌으로써 사이가 더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choyho@ajou.ac.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화성신문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인기기사목록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