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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화의 심리 칼럼] 계집애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1/05/03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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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정화 상담학박사 마음빛심리상담센터장     ©화성신문

젖을 먹고 있는 아이를 향해 할머니는 계집애한테 젖을 먹이고 있다고 며느리를 구박한다. 며느리는 눈치를 보면서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난다. 벗어나는 뒤통수를 향하여 할머니는 부엌에서 먹을거리를 가져오라고 소리친다. 며느리는 갓난아이가 젖꼭지를 놓지 않으려 안감힘을 쓰는 것을 억지로 떼어 놓고는 시어머니의 부름에 응한다.

 

이러한 모습을 모두 지켜보는 아들은 아내가 어머니의 말씀에 빨리 반응하여 잘하는지 눈을 부라린다. 아들은 아내가 어머니의 명령에 잘 따르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때 아이는 김이 올라오는 뜨거운 솥 옆에 홀로 뉘여져 있다. 다시 부엌으로 돌아온 엄마는 아이를 안고 젖을 물리려고 한다. 다시 시어머니의 호출이 이어진다. 이것 가져와라 저것 가져 와라는 명령이 계속 이어지고 며느리는 이에 즉각적인 반응을 하며 분주히 부엌과 방을 오고 간다.

 

갓난아이는 배고파 더 크게 울며 엄마를 찾는다. 아이의 우는 소리를 듣고 할머니가 중얼거린다. ‘계집애가 재수 없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계집애, 죽지 않고 아직도 살아서 시끄럽게 하네.’ 아들과 며느리는 이러한 말이 다 들리지만 못 들은척한다. 그리고 자신의 딸이 정말 재수 없는 딸, 쓸모없는 딸이라는 생각에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고의 침투에 무방비 상태가 된다.

 

그래서 부모는 딸을 바라보는 것이 편하지 않다. 할머니로부터 미움을 받는 딸을 보호하고 지켜야 하는 부모는 오히려 할머니로부터 살아남고자 자신들이 딸을 붙들고 있다는 것에 부담스러움을 느끼며 딸을 싫어하고 미워한다.

 

성장하면서 이 아이는 남자로 태어난 오빠가 부러웠고 여자아이로 태어난 자신은 죽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사춘기 접어들면서 깊은 우울이 찾아왔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살을 시도하는 일들이 잦아졌다.

 

우리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경험하게 되는 것은 한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축하받는 것이다. 이에는 부모의 따뜻한 눈빛을 받는 것이고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박수 소리를 듣는 것이다. 또한 배고품에 대해 충분히 채워짐이고 생리현상에 대해 자유롭게 해도 괜찮다는 온전한 허용의 경험들이다. 그런데 아이가 배고품과 생리현상에 대한 수치심, 그리고 성장하면서 존재감에 대한 박탈감이나 수치심을 경험하게 되면 자기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조심스럽고 미안하며 자신의 목소리나 자신의 행동으로 인하여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지나친 자기비하가 있다. 이는 겸손도 아니고 예의바름도 아니다. 이제부터 자신을 향한 축하와 박수를 보내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마음껏 웃어도 되고, 하고 싶은 행동을 해도 된다. 따라서 혼자 있을 때나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가슴을 펴고 크게 웃으며 자유롭게 마음껏 하고 싶은 말을 큰 소리로 말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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