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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의 전문가 칼럼 화성춘추 (華城春秋) 91]
폭력의 경험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1/03/08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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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민 노작홍사용문학관 사무국장     ©화성신문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새학기에는 설레기보다는 긴장을 더 했던 것 같다. 새롭게 만나게 될 선생님과 친구들에 대한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컸던 탓이다. 중학교에 진학하던 그 해에는 유난히 그랬다. 집에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곳으로 배정받은 학교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처음 가보는 동네였고, 오랜 역사만큼 남루한 건물들로 둘러싸인 교정은 어쩐지 싸늘해 보였다. 어린 마음에 남학교라는 사실도 조금은 못마땅했던 것 같다.

 

걱정과 달리 중학교 생활은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아주 유쾌하지도 않았다. 내게 학교생활은 주로 줄 세우기로 기억된다. 선생들은 주로 성적으로 줄을 세웠고, 아이들은 힘과 외모로 줄을 세웠다. 대략 한 달 정도면 서열이 정해졌다. ‘1등’과 ‘꼴찌’, ‘짱’과 ‘왕따’는 그때부터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한다. 우리는 태어난 지 겨우 14년 만에 교실의 서열을 바탕으로 자기의 미래를 예감하곤 했다. 낙관과 비관,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날들이 이어졌지만, 그조차도 사회에 진입하기 위한 일종의 의례라고 생각했다.

 

첫 학기가 절반 정도 지났을 때였다. 우리 반의 덩치 큰 아이가 한 친구를 때리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이나 자습시간이면, 교실 뒤로 불러내어, 그 아이를 마치 샌드백처럼 세워 뒀다. 한창 배우고 있는 태권도 연습을 하는 듯했다. 그 폭력의 현장에서 아무도 그를 말리지 못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그 누구라도 자칫하면 대신 샌드백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맞고 있는 아이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를 모르는 척하는 대다수의 학생들도 괴로웠다. 어쩌면 그 침묵이야말로 폭력에 연루되어 버린 자신에 대한 실망과 공포의 증표였을지도 모르겠다. 교실 속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적지 않은 방관자들을 양산하는 사회적 참극이다.

 

최근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의 ‘학폭’ 논란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가해와 피해 사실에 대한 공방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러한 공방을 보고 있을 대다수의 사람들은 분명 자신이 연루되어 있는 폭력의 경험을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학폭’에 대한 대중의 분노 속에는 폭력 일반이 함의하고 있는 그 무자비한 반인권적, 비도덕적 행위에 대한 단죄의 의미만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학교라는 공간 속에서 가해든 피해든, 혹은 방관이든 폭력에 연루되어 버릴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지난날에 대한 회한과 절망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학폭’ 문제가 사회적으로 다뤄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학교생활 이외에는 다른 삶의 가능성을 사실상 박탈당한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그 공간 속에서 불가피하게 마주할 수밖에 없는 폭력의 경험을 언제까지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교는 분명 배움의 공간이지만, 이는 다만 지식의 함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실 속 폭력은 물리적인 힘에 의한 강제력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간의 서열과 위계를 자명한 사회의 이치이자 원리처럼 가르치는 교육의 풍토 속에서 이미 싹트고 있는 것이다. 교실 속에서 경험되는 인간관계 자체가 수평적으로 이뤄지고 있지 않은 엄정한 현실이 오래토록 있어 오지 않았던가. 이런 상황에서 성적이든 힘이든, 자신보다 아래라고 여겨지는 아이를 깔보거나 괴롭히고, 그를 통해 일탈과 해방을 경험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 자명한 연결고리를 끊어내지 않는 이상, ‘학폭’에 대한 폭로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학폭’은 구조적인 이유에서 발생한다. 개별 사례들에 대한 분노를 넘어, ‘학폭’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한국 교육의 구체적 실상을 파악해야 한다. 물론 이조차 너무 뻔한 진단일 수 있겠지만, 이토록 분명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이유는 여전하다. 

 

학교가 폭력에 대한 최초의 경험을 제공하는 곳이 아니게 되길 바란다. 교실이 서열과 위계로 점철되어 있는 인간관계에 대한 학습이 이뤄지는 공간이 아니게 되길 희망한다.

 

master@noja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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