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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의 전문가 칼럼 화성춘추 (華城春秋) 84]
누구를 위하여 쓸 것인가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1/01/11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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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민 노작홍사용문학관 사무국장     ©화성신문

솔직히 잊고 있던 질문이다. 가령 이런 것이다. 나는 가끔 기회를 얻어 사회적·성적 소수자들의 권리에 관해 글을 쓰곤 했었다. 하지만 이런 글들이 오직 내가 아닌 그들을 위해 쓰여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창피하게도, 나는 글을 통해 오히려 그들의 존재를 소모시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이런 식으로 작성된 글이 반드시 무가치하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글은 때론 저자가 의도하지 않은 의미를 찾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창피한 효과’조차 쉽게 획득될 순 없는 것이다.

 

어쩌면 반대로 그런 방식의 ‘우연한 성취’를 기대해 볼 필요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다시 말해 ‘나-저자’가 사회의 다른 집단을 대변할 수 있거나 대표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 관해 말할 수 있는 ‘(특권의) 자리’ 자체에 내재하는 한계를 정확히 포착한다면, 나와 타자의 간격이 좁혀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해보기도 한다는 것이다. 

 

분명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권력이다. 그렇다면 권력의 자리에서 확보되는 내용이 과연 누구를 위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 ‘관해’ 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쓸 수 있어야 한다. 써야만 한다면, 그러한 자리는 어떻게 ‘다시’ 반성되어야 하는 것일까?

 

세상엔 분명 외쳐지고 있음에도 전해지지 않는 소리들이 있다. 또한 현존함에도 재현되지 않는, 그러니까 말할 수조차 없는 (비)존재들도 있다. 이 강제된 침묵, 혹은 묵인된 (비)존재의 그늘 속에는 그저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소리 없는 아우성’만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에겐 자신의 존재나 처지를 대신 증언해 줄 만한 사람들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대개의 글쓰기가 증언의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글쓰기의 오랜 사명은 아마 이러한 (어쩌면 다분히 상상적인) 기대로부터 비롯된 것일 게다.

 

하지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처지나 고통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자는 자기의 글에서 어떤 ‘균열’을 사유해내야만 한다. 이 ‘균열’이란 자기의 고통을 말할 수조차 없는 사람들과, 이들의 존재를 이성적 사유와 지식의 언어로 해설하는 자들 간의 ‘균열’을 뜻한다. 자기의 존재를 증명해야만 살 수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목소리를 받아 적으며 증언해야 하는 자들 간에는 돌이킬 수 없는 간극이 있다. 글을 쓸 수 있는 ‘지식인-권력’의 특권은 이 간극 속에서 반성되어야 한다.

 

인도 출신의 탈식민주의 이론가 가야트리 스피박은 언젠가 “하위주체는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바 있다. 그녀는 이 질문에 대해 “하위주체는 말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하위주체가 말을 했다면, 그는 이미 하위주체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아마 이 말의 더 구체적인 뜻은 이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위주체는 그 자신을 ‘하위적 위치’로 구성하는 지식/권력의 관계 자체를 바꾸지 않고서는 어떤 종류의 권위나 의미를 수반하는 방식으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사회의 지배계층에 반하여 일어난 민중들의 봉기라도, 정작 그것이 기록으로 남기 위해서는 지배계층의 언어와 의식 속에서 포착되어야만 하는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을 의식하지 않고, 글쓰기의 가치가 확보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의 서두에 제시한 ‘누구를 위하여 쓸 것인가’라는 질문 역시 이렇게 수정되어야 한다. ‘누구를 위하여 글을 쓸 수 있는 자의 한계란 무엇인가’라고. 글쓰기의 윤리라는 것이 있다면 아마 이 질문으로부터 그 일말의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본다.    

 

master@noja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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