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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경순 오산백합로타리클럽 11대, 29대 회장
“별명은 찍새, 봉사의 맛과 매력에 푹 빠졌죠”
리더의 첫째 덕목은 솔선수범, 좋아하는 말 ‘영원한 로타리안’
“로타리는 행복이자 청춘, 젊음 주는 엔돌핀 같은 존재”
 
김중근 기자 기사입력 :  2020/10/08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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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순 오산백합로타리클럽 전 회장이 자신의 사업장인 무진장갈비를 배경으로 포즈를 잡고 있다.  © 화성신문


  

인생 뭐 있어? 좋은 일 하다 가는 거지~.”

 

입버릇처럼 이 말을 자주한다는 김경순 오산백합로타리클럽 전 회장(11, 29대 회장)은 오산지역에서 왕언니, 왕누나로 통한다. 연륜(1954년생)이 있다는 의미하기도 하지만 통이 크다는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온다.

 

별명도 여러 가지다. 찍새, 냉면그릇, 긍정전도사, 영원한 로타리안. 찍새는 로타리 신규 회원을 영입할 때 김 회장이 설득하면 어김없이 가입하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냉면그릇은 간장종지와 달리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고 모든 걸 포용하고 수용하는 큰 그릇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문제가 생기잖아요. 일단 해결하려고 노력해요. 그러나 두 번 생각은 안 해요. 빨리 잊어버립니다. 툭툭 털어버려요. 내가 나를 달래는 스타일이에요. 우리 회장님(남편)하고 부부싸움도 안 해요. 남의 말 옮기는 걸 싫어합니다. 의리파 기질이 있나 봐요. 천만 원, 오백만 원 빌려주고 떼인 게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라요. 빨이 잊어야 병 안 생겨요. 내 인연이 당신하고는 여기까지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는 거죠. 오죽했으면 그럴까 측은지심이 생기더라고요. 내 마음이 편해지기도 하고. 어지간한 건 부딪히지 않으려고 해요.”

 

충남 서산 출생으로 공무원 집안에서 다복하게 살았다. 6남매 중 넷째. 위로 오빠 둘과 언니 하나, 동생이 둘이다. 남편을 만나 수원으로 시집왔다. 부부는 오산시 내삼미동에 적지 않은 규모의 갈빗집을 열었다. 상호는 무진장갈비. 당시에는 경제인, 정치인 등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사교의 장이었다. 지금도 그 명성이 고스란히 이어져 오고 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남편은 한국외식업중앙회 경기도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무진장갈비는 큰 부침 없이 30년째 같은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

 

 

▲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로타리안으로서의 자부심을 표현하고 있는 김경순 오산백합로타리클럽 전 회장.  © 화성신문

 

 

김경순 회장은 갈빗집을 하면서 알게 된 어느 경제인의 추천으로 로타리와 인연을 맺게 됐다. 당시는 로타리에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입회 조건이 까다로웠다.

 

김 회장은 1998년도에 오산백합로타리클럽에 가입했다. 백합로타리클럽은 1990년도에 창립돼 올해 1012일로 창립 30주년을 맞은 명문 클럽이다. 우연히 들어갔지만, 봉사활동을 하면서 봉사의 맛과 매력에 푹 빠졌다. 유복하게 자란 탓인지 돈에 욕심이 없어 직원들에게 식당을 맡기다시피 하고 봉사에 매달렸다. 입회한지 3년 만인 2000년도에 로타리클럽 회장을 취임했다.

 

총무, 재무도 안했는데 왕 어르신들이 저를 회장 자리에 앉히더군요. 회원이 30명 정도 됐어요. 러시아에 우물을 파주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국제로타리가 세계적인 봉사단체구나 하는 걸 실감할 수 있었죠. 그때 정말 열심히 했어요. 로타리에 미쳤었으니까요. 호호. 지금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요.”

 

로타리클럽 회장 임기는 1년이다. 그런데 2018-2019년도 회기에 다시 회장으로 추대됐다. 클럽 회원이 20명을 밑돌 정도로 위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구원투수로 등판한 김 회장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력해 신입 회원 20명을 가입시키면서 클럽을 위기에서 구했다. ‘찍새별명을 얻게 된 계기가 됐다. 만나서 공을 들인 사람마다 영입에 성공시켰기 때문이다. 지금 회원 수는 44.

 

제가 두 번째 회장할 때 대만과 자매결연했어요. 당시 한상회 3750지구 총재님한테 때를 썼죠. 클럽 회원 20명과 대만에 가서 장애인을 돕는 의미 있는 행사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회원들에게 글로벌 마인드가 생기는 계기가 됐어요. 지난달에는 필리핀에 마스크 만 장을 보내기도 했답니다.”

 

 

▲ 김 회장은 두 번째 오산백합로타리클럽 회장이던 2019년도에 대만과 자매결연했다. 클럽 회원들과 대만을 방문했을 때 현지 언론에 게재된 글.   © 화성신문

 

 

냉면그릇왕언니의 봉사활동은 로타리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오산시 여성후원회 7대 회장(20151~20181), 오산화성 전·의경 어머니회 초대 회장(2006~2008), 법무부 산하 보호복지공단 여성기술교육원 초대 회장(2016), 금암초등학교 학교운영위원장(2010~2016), 성산초등학교 학교운영위원장(2017~2019), 문시초등학교 학교운영위원회 위원(2020), 오산파크골프협회 부회장(2018)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법무부 산하 법사랑 위원으로 2003년부터 지금까지 18년째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00년 시작된 장애인 돕는 활동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감투를 쓰려고 한 게 아닌데 자꾸 쓰게 되네요. 감투라는 게 자기가 쓰려고 한다고 해서 쓸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오랜 세월 오산에서 활동하다보니 인맥이 많이 넓어졌어요. 오산에서 김경순 모르면 간첩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예요.”

 

리더의 첫째 덕목으로 솔선수범을 꼽은 김 회장은 긍정의 화신이기도 하다. 남들이 비 올 것 같다고 해도 김 회장이 비 안 올 거야하면 정말 비가 오지 않고, 남들이 길이 막힐 것 같다고 걱정해도 그런 소리 하지 말어하면 정말 귀신같이 길이 안 막힌다고 한다.

 

말이 씨가 되잖아요. 잘 될 거야 그러면 정말 잘 되는 게 인생의 이치잖아요. 긍정의 힘이죠. 제 기질도 기질이지만, 로타리가 가르쳐 준 교훈이에요. 올해로 로타리 생활 23년째예요. 지금가지 로타리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로타리가 좋아요. 자부심이 크죠. 로타리는 저에게 행복이고 청춘이에요. 인생을 젊게 만드는 엔돌핀 같은 존재니까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로타리안으로 활동하고 싶어요. 누가 그만두라 그럴까봐 겁나지요. 호호.”

 

 

▲ 김경순 전 회장은 연주 봉사를 위해 2년 전부터 섹소폰을 배우고 있다.  © 화성신문

 

 

해마다 복날이 되면 어르신들을 초청해 삼계탕을 대접하고, 구정 때면 떡국을 대접해온 김 회장. 그녀는 과거에도 행복했지만,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제가 조금씩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아요. 더 베풀고 싶고, 어려운 사람들이 자꾸 눈이 밟혀요. 한적한 곳에 어르신 쉼터를 하나 만들고 싶어요. 2년 전부터 섹소폰 배우고 있거든요. 조금 더 연습하면 연주 봉사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인생 뭐 있어요? 좋은 일 좀 하다 가는 거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영원한 로타리안이랍니다. 기자님, 그나저나 훌륭하신 분들이 많은데 저 같은 사람이 이렇게 인터뷰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요. 정말.”

 

김중근 기자 news@ih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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