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윤정화 심리칼럼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윤정화의 심리칼럼] 베란다 구석 다용도실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0/04/07 [13:06]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 윤정화 상담학박사 마음빛심리상담센터장     ©화성신문

엄마는 다섯 살 아들을 향하여 온화한 미소를 지긋이 보낸다. 일곱 살 딸에게는 눈길한번 주지 않다가 아들이 목마를 것 같으니 물 한 컵 가져오라고 딸에게 시킨다. 딸은 엄마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것이 너무나 반가워 대답과 동시에 부엌으로 뛰어가 동생이 마실 물을 가져온다. 딸이 물 컵 손잡이를 건낼 때, 엄마와의 손가락이 스친 그 찰나의 순간에 딸은 기뻐서 활짝 웃는다. 

 

그 순간 엄마의 눈을 마주치고 싶어 딸의 눈은 엄마를 향한다. 그때 딸의 몸이 휘청거리면서 아들 옆으로 넘어지고 만다. 순간 딸의 넘어진 몸이 아들과 부딪힐 뻔 했다. 딸이 당황하는 찰나 엄마의 거친 손바닥이 딸의 뺨을 향하였고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그려진 딸의 뺨 위로 소리 없는 눈물이 흐른다. 딸은 가슴 깊은 곳에서 우는 소리를 내며 세상의 지붕이 모두 날아가 버리고 자신은 더 이상 보호받지 못하고 내동뎅이 쳐지는 아픔을 느낀다. 

 

엄마는 아들이 다치지 않고 무사하다는 것에 함박웃음을 짓는다. 딸은 결국 엄마의 사랑은 자신을 향하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감을 안고 혼자만의 공간을 찾기 시작한다. 아이가 향한 곳은 집안에서 가장 어둡고 차가운 곳, 가족이 거의 드나들지 않는 베란다 구석 다용도실이다. 그곳에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도구들과 버릴만한 물건들이 어수선하게 놓여있다. 아이는 들어갈 공간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몸 하나 들어가도 괜찮고, 자신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 곳, 자신에게 냉정하게 뺨을 때리지 않는 곳은 이곳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삐죽삐죽 튀어나온 위험한 도구들을 치우면서 몸을 쑤셔넣는다. 그곳에 비집고 들어간 딸은 안에서 문을 닫아버린다.

 

아이는 어두침침하고 좁은 공간이지만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아늑함을 느낀다.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목 뒤에 막대기가 삐죽이 튀어나와서 고개를 옆으로 돌려야만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다. 이후 아이는 이곳을 찾을 때 마다 고개를 돌리고 앉는 습관이 생겼다.

 

아이는 자신이 만든 좁고 아주 작은 공간에서 엄마의 차가운 눈빛과 교차되는 아늑함을 느끼고 외로움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좁고 어두침침한 이 공간을 좋아하기 시작했고 엄마와의 관계에서 스스로 버림받은 아이로 정리하면서, 세상과의 관계 또한 단절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차가운 눈길을 조금이라도 덜 느끼기 위해 아이는 이곳을 자주 찾았다. 그리고 삐죽이 튀어나온 막대기 때문에 이곳에 앉을 때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아이가 되었다. 그렇게 어른이 된 아이는 자신을 힘들게 하거나 무시하는 사람을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게 되었고, 그들과의 관계에서 마치 엄마를 피해 다용도실로 들어가듯 쉽게 단절하는 사람이 되었다.    

 

무의식적인 우리의 사고와 감정 그리고 행동에는 우리가 살아온 긴 역사가 담겨져 있다. 그러므로 현재 드러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무의식을 의식화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이는 스스로를 향한 치료자, 안내자, 주체자가 될 수 있다.    

 

 www.maumbi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화성신문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인기기사목록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