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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 전문가칼럼 화성춘추(華城春秋) 45] 1인치의 장벽
허민 노작홍사용문학관 사무국장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0/02/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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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민 노작홍사용문학관 사무국장     © 화성신문

“자막의 장벽, 그 1인치 정도 되는 장벽을 뛰어 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봉준호 감독이 남긴 말이다. 이에 화답하듯 오스카도 ‘기생충’을 선택했다. 자막과 언어, 인종과 문화의 장벽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그동안 보수적이며 백인과 남성 중심의 영화제라는 불명예에 시달렸던 오스카의 입장에서도 ‘기생충’은 이미지 전환을 위해 적절한 시기에 출연한 작품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물론 ‘기생충’의 수상만으로 비로소 영화와 예술의 다양성이 인정받는 시대가 열렸다고 낙관할 수는 없다. 세계는 여전히 인종과 언어, 계급, 민족, 젠더, 세대, 지역 간의 간극과 갈등 위에서 분할되어 있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은 ‘알고 보면 별거 아니라는 의미’에서 ‘1인치’라는 재치 있는 비유를 동원했지만, 그 오랜 인식적 분할과 불화, 위계는 쉽게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아직 엄존하고 있다.

 

1인치의 장벽은 글로벌한 차원에서만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나 사회의 층위, 혹은 개인의 심정적인 차원에서도 인식의 한계를 규정하는 장벽들이 세워지곤 한다. 동등한 평가의 무대에 올려질 수 없는 예술 작품들은 도처에 널려 있으며, 분명 현존함에도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들은 ‘소수자’라는 이름으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기생충’은 세계의 다양한 층위에 존재하는 여러 장벽들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제안하고 있는 작품일 수 있다. 계급 격차의 현실을 수직적 공간으로 분할하여, ‘반지하’에서는 올려다 볼 수조차 없는 ‘저택’으로 ‘바퀴벌레’처럼 기어들어 간 사람들의 파국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작품의 주요 모티프 중 하나인 ‘냄새’는 돌이킬 수 없는 ‘차이의 메타포’로 읽히기도 한다. 한 공간에 있길 허락받았을지라도, 도무지 받아들여질 수 없는 ‘타자와의 간극’이 ‘불결한 냄새’로 현현하고 있는 것이다.  

 

나와 다르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에 대해 배타적으로 접근하는 자들은 그 자신 역시 언제든 소수(자)의 자리에 처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곤 한다. ‘기생충’만 해도, 거대 자본이 투여되고 지자체의 협조를 받아 제작되어, 메이저 배급사에서 유통된 엄연한 상업영화이다. 작품의 내용도 계급 문제를 다루고 있을 뿐, 결코 다양성 영화라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기생충’은 헐리우드에서는 상대적으로 ‘작은 영화’에 속하며, 유색 인종이 만든 매니아틱한 작품일 뿐이다. 이처럼 다수와 소수, 주류와 비주류라는 규정은, 그리고 정상성의 범주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기 마련이다. “기생충”의 영화적 성취가 세계에 교훈을 주었다면, 이는 다만 계급 격차에 대한 새삼스러운 환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1인치의 장벽에 대한 반성을 유도했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아울러 ‘기생충’은 1인치의 장벽들과 싸우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기도 했다. 예술이란 다수와 소수, 주류와 비주류,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일상적인 구분을 변동케 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과연 누가 정상이고, 무엇이 주류적 문화인가? 예술은 바로 이러한 식별 체계를 감각적인 차원에서 변화시키는 활동에 다름 아니다. 예술을 통한 사회적 소통이란 비슷한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의 감상 나눔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와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때론 혐오스럽고 불결해 보이기까지 한 존재들과 그럼에도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지를 고민케 하는 계기를 나누는 행위들이 예술적 소통이다. ‘기생충’은 그토록 보수적이었던 오스카의 변화를 예감케 한 작품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이제 그에 환호하는 우리들의 흥분을 1인치의 장벽에 대한 성찰로써 다잡을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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