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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 전문가칼럼 화성춘추(華城春秋) 26] 화성의 문학, 문학의 화성
손택수 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19/09/0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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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택수 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     ©화성신문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장소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정주할 권리가 있다. 기획된 근대는 장소로부터 사람을 떼어내어 유동적인 시스템 속의 부유물로 만든다. 속도와 스펙타클의 사회가 ‘장소애’를 대체하고 모든 장소는 개성 없이 소비 교환되는 상품으로 전락한다. 장소성을 잃어버린 자리에 남는 것은 결국 소외와 사물화이다.

 

여기에 대한 대항담론이 바로 문학을 하나의 진지로 만든다. 시인과 작가들은 자신이 뿌리 내린 장소의 구체적 삶을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균질적 공간 속에서 저마다의 숨결을 놓치지 않는 차이를 생산한다. 향토정서를 곡진한 리듬으로 전경화한 소월로부터 북방정서를 육화한 백석 그리고 세련된 이미지로 민족방언의 마술을 유감없이 보여준 정지용 같은 시인들과 이효석, 채만식, 박경리, 최명희 같은 작가들이 바로 지역을 통해 보편적 가치를 달성한 사례들이라고 할 만하다. 한국문학사는 이와 같은 지역의 별들이 만든 성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산업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전통적인 이야기꾼의 소멸’이라는 현상이다. 발터 벤야민의 말대로라면 이야기꾼의 소멸은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너그럽고 여유로운 삶의 분위기, 따듯한 공동체의 와해와 함께한다. 진정한 의미의 이야기는 살아있는 경험과 지혜 속에서 나와야 하는데 이제는 지혜가 아닌 지식의 소비에 급급하다. 그 빈자리를 신문, 텔레비전, 인터넷, SNS와 화려한 스토리텔링이 메꾸지만 정작 정보만 소비되고 진정한 이야기는 없는 공허가 유령처럼 떠돌아다닌다. 문학마저 하나의 상품이 되어 소비되기에 급급하고 갈증은 갈수록 더해져 새것을 쫒는 ‘새것 콤플렉스’가 만연한다. 

 

소비시장의 포로가 된 문학을 반성하는 방법 중 하나가 지역문학이다. 저마다의 차이를 부정하고 실존의 감각을 무화시키는 흐름 속에서도 지역문학은 그 지역 고유의 풍토와 숨결 그리고 대지에 착근한 진경들을 펼쳐 보임으로써 중심이 외면한 삶의 자리들을 보다 핍진하게 천착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으로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지역문학이 이 시대의 실천문학으로 호출되는 이유이다.   

 

문학관 일을 하면서 지역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오랫동안 공직에서 지역의 문화행정을 도맡아 온 분과의 만남이 계기가 되었다. 화성을 무대로 한 대표적 소설이나 시가를 소개해 달라는 제언에 난색을 표한 그는 그런 작품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뜻밖의 답을 보내왔다. 그는 자신의 장소와 공간에 애착을 지니지 못한 지역의 문인들을 힐난하며 지역문학의 궁핍이 걱정스럽다는 투로 혀를 차기까지 했다. 이 지역의 역사가 아름드리 나무의 품을 닮았는데 그럴 리가......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곧 지역 문학 자료 수집에 들어갔다. 

 

우선 당성에서 유학을 모색했던 원효대사로부터 최치원의 오언율시 그리고 중세의 정조대왕과 유몽인, 남효온, 이옥, 임천상, 정윤영 등의 텍스트가 손에 들어왔다. 여기에 근대문학 자료들을 탐문하였는데 경이로운 자료들이 쏟아져 나왔다. 문학사적으로 이미 입지점을 지닌 박팔양, 박승극 같은 일제강점기 하의 작가들로부터 정대구, 홍신선, 홍일선 같은 한국전쟁 이후의 시인들을 비롯하여 최근의 최정례, 이덕규, 신련락, 이원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지역 못지않은 작가들이 두꺼운 퇴적지층을 이루고 있었다. 그밖에 화성지역을 노래한 작품들로 용주사를 창작배경으로 한 조지훈의 「승무」, 박목월의 「제암리의 참살」, 황동규의 「어느 초밤 화성시 궁평항」, 최두석의 「농섬」, 이재무의 「제부도」같은 시로부터 농촌공동체의 변화과정을 그린 이문구의 「우리동네」와 분단의 통증을 그린 송기원의 「다시 월문리에서」, 제암리를 배경으로 한 홍성원의 「먼동」같은 소설들에 이르기까지 간략하게 간추리기 힘든 목록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새로 유입된 작가군과 동시대의 작품들까지 포함한다면 ‘화성의 문학 혹은 문학의 화성’을 보다 드넓은 지평 가운데 조망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섰다.   

 

연내에 이 자료들을 엮어 화성 지역의 정체성이 담긴 단행본을 출간하려고 한다. 기왕에 시작한 마당이니 화성의 문학지도를 만들고 그를 바탕으로 노작홍사용문학관 내에 ‘지역문학관’의 가능성을 엿보고자 한다. 제암리에 가서 홍성원의 소설을 읽고, 제부도에 가서 이재무의 아름다운 시구절을 읊는 인문지리적 감수성들이 자연스럽게 화성의 로컬리티와 만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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